Essay <진짜 만족>
바리바리 준비해 쓰줍을 나갔는데 막상 성과가 없는 날도 있다. 유독 쓰레기봉투가 차지 않는 날. 길 곳곳을 살펴보아도 좀처럼 쓰레기가 안 보이는 날. 의지를 갖고 쓰줍하러 나온 사실이 민망할 정도로, 이미 깨끗해진 거리를 마주할 때가, 가끔 있었다.
처음 느껴진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준비한 일을 뭔가 해내지 못한 것 같다는 감각. 계획한 일에서 원하난 성과를 만들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빈 봉투를 들고 돌아와서도 어딘가 아쉬운 느낌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활동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하게 쓰줍을 나갔지만 주울 쓰레기가 거의 없어 산책만 하다 돌아왔다고 썼다. 나는 무의식 중에 오늘 쓰줍은 망했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댓글 반응은 내가 예상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거리가 깨끗한 걸 보니 기분이 좋았겠다, 오히려 다행이다, 쓰레기가 없으니 좋다... 긍정적인 말들이 댓글로 달렸다. 순간 쓰줍을 내가 하나의 ‘과제’로만 생각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정기적으로 쓰줍을 나가기 시작한 이후로, 쓰줍에 익숙해지며 오히려 그런 시각이 생겼다. 빈 봉투를 들고 돌아온 것은 실패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니었다. 애초에 쓰줍을 할 필요가 없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날이었다. 쓰레기가 없는 최상의 상태를 보고도 만족하긴 커녕 아쉬워 하다니! 너무 과제 중심적으로 쓰줍을 대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후 몇번 비슷한 날들이 있었다. 그럴때면 나는 쓰줍을 ‘하지 못한’ 날이라 쓰지 않고, 쓰줍을 ‘할 필요도 없었던’ 날이라 썼다. 숙제를 해치우듯 쓰레기를 찾아헤매지 않고,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이미 깨끗한 거리를 걷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하기 시작했다.
알맹이 없는 하루였다는 걱정은 애초에 의미없던 것이었다. 오히러 그것은 본질에 반하는 생각이었다. 주울 쓰레기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렇기에 내가 할 일이 없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좋은 일이었다. 항상 왜 쓰줍을 시작했는지 잊지 않아야 겠다고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