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담배꽁초와 중실화죄
쓰줍을 하다보면 담배꽁초를 많이 보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나 가끔은 참 담도 크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바로 풀숲에 버려진 꽁초를 보았을 때다. 만약 불이라도 난다면 이건 상당히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형법
제170조 (실화)
①과실로 인하여 제164조 또는 제165조에 기재한 물건 또는 타인의 소유에 속하는 제166조에 기재한 물건을 소훼한 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 한다.
②과실로 인하여 자기의 소유에 속하는 제166조 또는 제167조에 기재한 물건을 소훼하여 공공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제171조 (업무상실화, 중실화)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제170조의 죄를 범한 자는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170조는 실수로 불을 낸 경우에도 처벌하고 있고, 중대한 과실로 불을 낸 경우엔 ‘중실화’라고 하여 더욱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즉 큰 실수로 불을 냈다면 중실화가 적용되어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것인데, 풀숲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이 중실회로 처벌 대상이 될까?
판례는 “중실화는 행위자가 극히 작은 주의를 함으로써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부주의로 이를 예견하지 못하는 경우‘라고 보면서 해당 사안에서 ”피고인이 약 2.5평 넓이의 주방에 설치된 간이온돌용 새마을보일러에 연탄을 갈아넣음에 있어서 연탄의 연소로 보일러가 가열됨으로써 그 열이 전도, 복사되어 그 주변의 가열접촉물에 인화될 것을 쉽게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여 위 보일러로부터 5 내지 10센티미터쯤의 거리에 판시 가연물질을 그대로 두고 신문지를 구겨서 보일러의 공기조절구를 살짝 막아놓은 채 그 자리를 떠나버렸기 때문에“라고 보아 중실화를 인정하였다 (대법원 1988. 8. 23. 선고 88도855 판결)
위 판례에 따르면 주변에 쉽게 불이 붙을만한 물질이 있어 불이 붙을 수 있을 것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데도 이를 방지하지 않고 불이 붙을만한 행동을 하였다면 이는 ‘중대한 과실’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낙엽이 많은 풀숲은 가연성물질이 충분한 곳이고, 그 곳에 꺼진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불씨를 던진다면 불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예측가능하다. 그런데도 확실히 불씨를 끄는 조치를 하지 않고 자리를 뜬다면 충분히 중실화죄가 인정된다고 본다.
하금심에서도 폐지보관소에서 담배를 피우다 바닥에 버린 경우 중실화를 인정하여 금고 4월, 집행유예 1년의 형이 선고되었고(광주지방법원 2021. 8. 13. 선고 2021고단2093 판결), 갈대밭에서 담배를 피고 꽁초를 버려 불이 난 경우에 중실화죄를 인정하여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2. 22. 선고 2022고합720 판결) 후자의 경우 그나마 기적적으로 갈대밭이 8평 정도밖에 타지 않았고 그로 인한 손해를 피고인이 다 배상했기에 이 정도이지, 큰 불이였다면 결코 벌금형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중실화죄는 그 형을 3년 이하 금고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가볍지 않은 처벌 수위다. 폭행죄의 형이 2년 이하 징역밖에 되지 않는다. 어쨌든 과실범이라는 점을 감안해 금고의 기간보다는 벌금의 상한액이 상당히 높은데 다른 죄들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무거은 처벌 규정이다. 상습도박죄와 거의 형이 일치하는데 상습도박죄가 수사기관에서 주기적으로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범죄라는 것을 생각하면 중실화, 실화죄의 무게감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단순히 풀숲이 아니라 산이라면 화재 시 산림보호법이 적용되어 벌금액 상한이 올라갈뿐만 아니라 흡연행위, 꽁초를 버린 것 자체만으로 3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산림보호법
제53조(벌칙)
⑤ 과실로 인하여 타인의 산림을 태운 자나 과실로 인하여 자기 산림을 불에 태워 공공을 위험에 빠뜨린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57조(과태료)
④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3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 제34조제1항제2호를 위반하여 산림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담배꽁초를 버린 자
함부로 꽁초를 버렸다가 불이 나는 것도 겁나는 일이고, 그로 인해 상당히 무거운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풀숲에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그 심리가 궁금하긴 하다. 그리고 풀숲에 담배꽁초 버리는 현실은 과장이 아니다. 위 사진들은 예전에 쓰줍 나갔을 때 단 1번의 쓰줍산책길에서 찍은 풀숲 꽁초 사진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