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쓰줍게를 시작하기 전의 기억 하나.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다.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 내가 재미있어 하는 취향,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까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남들이 알지 않았으면 했다. 독특한 사람, 이상한 사람, 남들과 다른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상황이 부끄러웠다. 어느새 나는 무의식 중에,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모습들에 대한 수치심을 가지고 있었다.
무난하고 보편적인 '가면'으로 열심히 나를 가렸다. 그것은 편리하고 유익했다. 어디에서든 호불호 갈리지 않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의 고유한 자아는 오직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만 존재했다. 굳이 드러낼 필요도 없지만, 굳이 애써서 숨길 필요도 없는 모습이었다.
2.
쓰줍게를 시작한 뒤의 기억 둘.
'용기내 챌린지'를 처음 하기로 한 날이었다. 카페 앞에서 서성이기를 몇 분째.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 몇 번이고 스크립트를 짜고 있었다. 사실은 그렇게까지 고뇌할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카페에 들어가는 것을 계속해서 망설이고 있었다.
특이해보일 수 있는 요청을 했을 때, 나를 의아하게 쳐다볼 사장님의 눈빛.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그 찰나의 상상이 나를 괴롭혔다. 왜 챌린지의 이름에 '용기'가 붙었는지 실감한 순간이었다. 온갖 상상을 하며 문을 들어서니, 막상 사장님은 아무 것도 궁금해하지 않으시면서 용기에 간식을 담아주었다. 용기는 내가 상상한 두려움이, 실제로는 허상이라는 사실을 마주하며 얻어지는 것이었다.
로스쿨 시절 동네 거리에서 쓰줍을 할 때도 왠지 모를 두려움이 있었다. 아는 친구들을 갑작스럽게 마주했을 때, 내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볼 그 시선이 무서웠다. 나는 잘못하지도 않은 나의 행동을 '해명'하기 위해 속으로 수백 가지 설명을 떠올렸다. 최대한 이상해보이지 않을, 무난하게 납득 가능할 설명들을. 그러나 그 설명들 중 무엇도 쓰줍을 하게 된 나의 실제 동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설명보다는 나를 감추기 위한 변명에 가까웠다.
나에게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것은 카페에 가서 플라스틱 용기를 내밀 용기도,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러 나갈 용기도 아니었다.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자기다울 용기였다. 관심 있는 것에 대해 관심 없는 척 하지 않을 용기. 내가 가진 고유한 생각과 취향을 숨기기 위해 애쓰지 않을 용기.
3.
쓰줍게가 처음으로 쓰줍에 나선 날은 2023년 1월 4일이다. 곧 2년이라는 시간이 되어간다. 쓰줍게가 지금까지 주운 쓰레기는 1,000L를 목전에 앞두고 있다. 적지 않은 시간과 활동이 쌓였다.
활동을 하다보면 종종 쓰줍게를 시작하기 전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와 비교할 때 나는 어떤 부분들이 달라졌을까. 단순히 환경 문제에 더 눈뜨게 되는 정도의 변화였던 걸까. 그보다는 본질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평범함과 무난함이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을, 보다 자기다워질 용기를 얻었다는 점이다.
쓰줍게를 시작하고 한동안은 활동 사실을 철저히 주변에 숨겼다. 특히 로스쿨 밖의 친구들에게는 더더욱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활동을 이어가며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환경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만의 실천을 공유하는 것이 더욱 좋아졌다. 자랑하듯 떠벌리고 싶지도 않았지만, 굳이 그런 모습이 내가 아닌 척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에 대한 궁금증이 줄었다. 대신 내가 하는 생각들을 들여다보는 일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
용기를 내는 일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쓰줍게를 시작한 뒤로 우리는 이전까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환경에 대한 새 이슈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때로는 면밀히 분석한다. 주변 친구들에게 분리배출에 대한 상세한 팁을 공유한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사람들과 함께 플로깅을 하며 환경에 대한 관심을 적극 나누기도 한다.
환경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실천할 용기'다. 실천한다는 것은 나를 바깥으로 꺼내는 행위다. 속으로만 생각하던 것들을, 직접 행동으로 보인다는 의미이다. 사람마다 정도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거기에는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유독 더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나다워질 용기를 쓰줍게를 통해 키운 듯하다. 앞으로도 나를 나답게 만들어줄 경험들을 쌓아가고 싶다. 그 경험들의 중심에 쓰줍게가 한 자리 차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