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모임에서 마신 테이크아웃 컵을 어디에 버릴지, 나는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컵을 버릴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 옆에, 길 한가운데에, 벤치 아래에 버려진 쓰레기들만 보일 뿐이었다. 결국 쓰레기통을 찾지 못하자, 귀가를 위해 들어간 지하철역에 겨우 컵을 버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문제는 사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쓰레기 종량제’가 처음 시행된 1995년, 정부는 길거리 쓰레기통을 줄이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나온 쓰레기를 길거리 쓰레기통에 무단으로 투기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종량제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지금은 어떨까. 지방마다 사정이 다르다. 900개가 넘게 설치된 곳도 있는 반면(가평군), 1개도 없는 곳도 있다(화성시, 과천시 등). 서울특별시는 최근 ‘가로 휴지통’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디자인의 쓰레기통을 곳곳에 설치하고 있다.
길거리 쓰레기통 설치는 무단투기 문제의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눈에 쓰레기통이 보일 때와 보이지 않을 때의 심리적 차이는 생각보다 더 크다. 그렇지만 쉽게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쓰레기통을 대폭 늘리려면 공공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새롭게 처리 시스템을 설계해야 하고,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정책의 도입은 항상 이익과 비용을 신중하게 검토하며 이루어져야 한다.
쓰레기통 주변에 오히려 무단 투기가 늘어난다는 목소리도, 가정 및 사업장에서 쓰레기를 투기하는 일이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취지인지 이해는 되지만, 그것이 ‘쓰레기통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쓰레기통을 늘리지 않는 것이 과연 쓰레기를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쓰레기통이 있는 곳보다는 없는 곳에서 40% 더 많은 쓰레기가 배출된다는 것이다(대전세종연구원, 2018).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길거리에는 결국 지금보다 더 많은 쓰레기통이 필요하다. 남는 것은 ‘얼마나’, ‘어떻게’의 문제이다.
우선, 방향성을 제시할 ‘법’의 존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길거리 쓰레기통의 문제는 철저히 지자체별 정책에 의존해 왔었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법 규정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지자체마다 입장도, 방향도 달랐다. 일관된 방향성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법률 차원에서 규정이 필요하다. 또한, 쓰레기통을 무작정 늘린다고 좋은 것이 아니며, 쓰레기통의 배치 또한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자칫하면 과유불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 쓰레기 투기량이 많은 곳에 특히 많이 설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사회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이 있다. ‘개인’의 변화와 ‘법/정책’의 변화가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두 가지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과 정책의 개선은 직접적으로 개인의 의식에 영향을 준다. 눈에 띄게 쓰레기통이 늘어난다면, 자연스럽게 길거리에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줄어들 것이다. 변화가 눈에 보인다면 사람들의 생각 역시 조금은 바뀐다. 그 힘을 믿으면서,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정책 개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